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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군정청과 윤석열의 할아버지 윤호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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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 총재: 윤호병은 1948년 미 군정청에 의해 조선은행 총재로 임명되었습니다

1948년 10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은 윤호병 조선은행 총재를 사퇴시키고 최순주를 그 자리에 앉혔다. 조선은행 총재는 법률에 따라 환은 총재직을 겸임하는데, 넉 달 전 미 군정청이 임명한 윤호병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미 군정청이 지시하는 외환정책을 집행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사진3:농지개혁법안 공포를 알리는 당시 신문 기사(1949년 6월). 이듬해 3월 시행된 남한의 농지개혁은 북한에 비해 정확히 4년 늦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승만은 환은을 해체키로 결심했다. 환은이 존속하는 한, 새로 체결된 한미원조협정 때문에 외환정책은 물론 어떤 경제정책의 자주성도 확보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환은 업무 중 대미(對美) 교섭기능은 대통령 직속기구인 외자총국(1949년 1월 17일 신설)에, 외환보유액 관리기능은 조선은행에 각각 흡수(2월 1일)시켰다. 백두진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얼마 뒤 그에게 차관급인 외자총국장을 맡겼다.
 

소원을 이루게 된 조선은행은 환호작약하고, 특권을 잃는 조선식산은행은 대경실색했다. 이승만의 강펀치를 얻어맞은 ECA도 당황했다. 생각 끝에 일제가 남긴 조선은행도 폐쇄하고 미 연방준비제도 시스템을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행정부에서 독립된 중앙은행이야말로 이승만을 확실히 견제할 수 있는 장치라고 본 것이다.
 

이승만은 씩 웃었다. 연준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세웠다. 자신이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1912년) 자신의 우상이자 이 대학 총장을 지낸 윌슨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한 이승만은, 자신도 비슷한 업적을 이루리라 벼르고 있었다. 그때 김도연 재무장관이 편지 한 장을 들고 방문을 두드렸다. 이것이 다음 이야기의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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