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 1939년 지어진 경무대 총독 관저에서 1910년 지어진 용산 총독 관저로 옮겼다네요.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인 청와대는 1939년 지어진 일제의 총독 관저에서 비롯했어요.
1905년 말 을사늑약을 맺은 일제는 1906년 2월 조선에 통감부(뒤의 총독부)를 설치했어요.
1대 통감은 이토 히로부미였죠. 통감부는 임시로 현재의 서울 광화문 앞 ‘외부’(외교부) 건물(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자리)을 쓰다가 1907년 서울 중구 예장동 ‘왜성대’(서울애니메이션센터 일대)에 새 건물을 지어 옮겼습니다. 통감 관저는 처음부터 왜성대 일대에 마련됐어요. 1885년부터 있던 일본 공사관 건물을 통감 관저로 바꿨습니다. 현재는 그 자리에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가 조성돼 있어요.
이 통감 관저는 한-일 병합의 현장이었습니다. 당시 총리대신 이완용은 1910년 8월22일 오후 1시 창덕궁 대조전에서 순종 이척을 모시고 내각 회의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일본과의 병합 조약을 보고했어요. 보고를 받은 순종은 이완용을 전권위원으로 임명해 조약을 체결하도록 했습니다. 오후 4시 이완용은 왜성대의 조선 통감 관저로 가서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과 만나 한-일 병합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이렇게 문서로 나라와 백성을 일제에 넘겼죠.
이완용의 전기 <일당기사>엔 당시 상황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황제(순종) 폐하의 소명을 받들기 위해 흥복헌에서 만나뵈었다. 말씀(칙어)을 받들고 전권위임장을 받아 곧장 통감부(통감 관저)로 가서 데라우치 통감과 만나 일-한 합병 조약을 상호 조인하고 그 위임장을 궁내부에 다시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