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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의 구한말, 윤 정부의 적은 위정척사, 다시 돌아봐야 할 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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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위쿠테타의 주인공 윤석열 정부 시대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린다.....

조선 500백 년의 근간이었던 우리의 사상과 왕조...최익현의 지조와 삶이 지금 상황에 제일 필요하지 않을까?

조선의 적은 일본도, 청나라도 아닌 조선의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친일파가 되었고, 일제로 부터 자작을 하사받았다.  이들이 원하는건 조선 왕족을 무너뜨리고  일본인이 되는 것이리라. 그래서 일본은 살아있다. 

당시 일본에 의존하는 세력은 개화파, 중국에 의존하는 세력은 수구파, 러시아에 의존하는 친러파까지... 이들이 한국의 적이었다.  미군정을 지나, 수구파는 미국에 의존하는 파로 바뀌었다.  죽은 자의 시대로  떠나본다.

1882년 - 임오군란 : 한국 군대가 폐지되고, 명성황후의 별기군(신식군대), 일본인 장교가 군사훈련을 시키는 일본의 꼭두                각시다.

1884년 - 김옥균을 필두로 개화파가 갑신정변 3일 천하로끝나고, 대원군 복직으로 의병들과 손잡고 나라의힘이 커지니 일               본군이 일본으로 돌라가려 할때, 청나라 마건충이 4,500명 군사를 데리고 서울로 들어온다. 이 때  대원군을 청나                 라로 납치한다. 

1893년 - 갑오개혁 소식에 최익현은 '청토역복의 제소'라는 상소문을 올린다. 

1894년 ~ 1895년 - 갑오농민전쟁, 동학혁명을 평정한다는 핑계로 일본군대(군국기무처를 설치)를 동원하여 강압적으로 

                          정치개혁을 한다. 군국기무처는 국가의 모든 행정 부서를 현대식으로 고침

을미개혁(일본의 제2차 갑오개혁)실시: 과거제 폐지, 총리대신.아문대신들에게 관리 임용권 부여, 행정구역 8도를 23부로 개편, 문무와 반상의 구별을 폐지함, 음력 대신 양력 사용, '건양'이라는 연호 사용, 우체사(우체국) 설치, 유길준 내무대신은

단발령 강요==>유생들의 을미의병

1896년 2월 11일 - 친일 내각 붕괴(김홍집과 어윤중은 살해, 유길준.조희연.권형진,우범선->일본으로 망명, 김윤식은 유배)

박정양, 이완용, 조병직, 이윤용, 윤용구, 이재정==>친러,친미파로 내각 구성==>다시 친일파가 됨

1896년 만민공동회-서재필 중심으로 서울에서 조직.독립협회의 정치 활동 중 하나, 열강의 국권 침탈과 지배층에 의한 민권유린,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회 정치 단체. 자주국권,자유민권, 자강개혁사상에 입각한 근대화 운동

박영효와 서재필은 갑오개혁 후 일본망명 후 귀국하여 조정중신이 됨

1897년 10월 국호는 "대한제국" 연호는 "광무" 임금 대신 "고종황제" 없는 왕비"명성 황후"

1898년 고종은 최익현에게 "의정부 찬정"  최익현의 시무12조를 받은 후엔"궁내부 특진관" 이라는 벼슬 내림

최익현의 시무 12조

1.신하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소서 7.만민공동회를 혁파하여 변란의 조짐을 막으소서
2.음식을 함부로 들어 건강을 해치지 미소서 8.부모의 상중에 있는 관리는 기용을 금하여 효를 다하게 하소서 
3.내시나 궁녀 등 사사로이 모시는 이를 멀리하소서 9.왕실에서 쓰는 모든 돈을 절약하소서
4.물건을 아껴쓰는 모범을 보이소서 10.군사들을 잘 훈련시키고 군법을 엄히 하소서
5.대신들을 잘 감독하여 이들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하게 하소서 11.국가의 원수와 역적은 벌을 주어 대의를 밝히소서
6.상벌을 확실히 하여 기강을 세우소서 12.중국이나 일본에 의존하려는 이를 경계하소서

 

1899년 최익현은 경기도 양평의 백운사를 유람->춘천 곡운의 구곡 구경

1900년 충남 청양군 목면 송암리로 이사

1904년 러일전쟁 후 일본이 승

1904년 2월 한일의정서 체결

       *한일의정서 제 1조 - 대한제국 정부는 대 일본제국 정부를 믿고 시정의 개선에 관하여 그 충고를 들을 것

                                         광대한 토지를 일본이 군사 용지로 점령

1904년 3월 일본은 한국의 통신기관도 군용으로 강제 접수함, 이때 ,경부선.경의선 철도 부설권을 일본에 넘김 

1904년 8월 제1차 한일 협약 강제 체결

*대한정부는 대일본정부가 추천하는 일본인1명을 재정고문으로 하여 대한정부에 파견하고, 재무에 관한 사항은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 실시할 것

*대한정부는 대일본정부가 추천하는 외국인 1명을 외무고문으로 하여 맞아들이고, 외교에 관한 용무는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 실시할 것

*대한정부는 외국과의 조약체결, 외교안건 등 대일본정부와 토의할 것

후에 최영년에게 고종의 밀서를 최익현에게 전달하게 함,  궁내부 특진관 벼슬을 내림==> 이때 최익현 나이 72세

최익현의 5조 시무책

1.어진 인재에게 나랏일을 맡기시오
2.백성들에게 세금을 과하게 거둬 원망을 사지 마십시오
3.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시오
4.신의를 닦아 이웃나라와 교섭하시오
5.나라의 예법을 세워 삿된 사상이 들어오지 않게 막으시오

한일의정서 수립, 한일협약체결,을사조약체결 등 한국의 국권 침탈을 위한 일제 부역자의 대표자

==>장곡천(하세가와), 임권조(하야시 곤스케)-주한공사

최익현은 일본 돈 차관에 대한 상소도 올리는데 친일파 6명을 참수하라는 상소문을 올리는데, 이를 일본이 입수하게 됨

교자(지붕 없는 가마)에 최익현을 태워 일본 헌병대로 감

국모시해 후 미우라고로 공사와 도피한 역적 유길준과 이범래

1905년 11월 17일 - 일본은 대한제국을 협박하여 조약을 체결(제 2차 한일협약,을사보호조약) -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화

==>민영환,조병세,홍만식,김봉학 자결,음독자살

1905년 11월 29일 - 최익현의 '청토오적소'라는 상소문- 박제순 외무부 장관을 바꿔야 함 *이지용,이근택,이완용,권중현

1906년 2월 충남 논산시 노성면의 '궐리사' 에서 의병모집 *궐리사는 공자가 태어난 곳이름

       국권회복 113명 '동맹록'==>전북 태인으로 의병 참가

1906년 4월 13일 최익현(임병찬,정시해)의 순창기병 -  관군:일본군 앞잡이 순창군수(이건용)와 전주 관찰사(한진창), 광주 관찰사(이도재) 

1906년 5월 13일 민종식의 홍주기병 - 서천읍 공격==>서천군수(이종석)감금->비인 함락->남포군수(서상희)읍성공격, 일본국 사령관(장곡천) 홍주성 포위, 공주의관군까지 합세==>의병부대 승

1906년 11월 17일 대마도에서 최익현 순국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담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 파견

   최익현의 '포고팔도사민'이라는 상소문==>결국은 의병봉기  행동강령 '창의격문' 과 '재격문' (애국애족사상)

1910년 경술국치 - 황현 음독자살

최익현의 위패를 모신 사당

지산사,시산사, 봉산사, 모충사,도동사, 대산사, 월악사,오강사 

최익현의 동상

충남 청양군 대치면 대치리,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하성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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