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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광복군과 의열단..... 다시 한국사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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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로 인하여 한국사 공부를 제대로 하게 된다. 많은 장관들의 집안이 광복군과 의열단의 후손들이 많구나... 

윤석열 정부의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 부친 6·25참전-시댁은 독립운동가 백인 권준 장군의 집안

의열단 출신의 백인 권준 장군이 강정애 장관의 시할아버지라고 한다.

백인 권준 장군은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 창설에 참여하였고, 조선의용대 비서장, 임시정부 내무부차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육군대령, 수도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 관료 · 독립운동가라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 군대는 광복군을 잇는다고 지금까지 알았지만 미군정을 잇는거 아닌가? 미군정은 한국 군대 광복군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미군정 하에서 고위직을 맡는다? 친일 아니면 친미란 생각이 엇뜻 들었다. 그래서 찾아본다. 아 나는 왜케 힘들게 살까... 쓸데없는 나라걱정.... 주변사람들한테 듣는 이야기...ㅠㅠ

 

권준은 1895년 5월 12일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척동리에서 태어났다. 1917년 광복회(光復會) 조직에 참여하여 격렬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1919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베이징[北京]에서 김원봉(金元鳳) 등 13인의 한 사람으로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였다. 권준은 군자금 조달, 폭탄 제조 등의 임무를 맡아 종로경찰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의 폭탄 투척과 도쿄 이중교(二重橋) 투척 등을 적극 지원하였다. 권준은 1926년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에서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북벌전(北伐戰)에 참전하였다. 1926년 한커우[漢口]에서 개최된 한국인, 중국인, 인도인, 몽고인, 안남인(安南人), 대만인 등으로 조직된 동방피압박민족연합회(東方被壓迫民族聯合會)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권준은 1932년에는 난징[南京]에서 중국 정부의 후원을 받아 한국인군사학교를 설립하고, 교관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간부를 양성하는 한편,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 입당하여 활약하였다. 1934년에는 중국군 연장(連長)으로 독립운동을 측면 지원하면서 항일전에 참전하였다. 1944년 충칭[重慶]에서 임시정부에 들어가 내무부 차장에 임명되어 활약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권준은 1945년 해방 후 무한지역교포선무단장(武漢地域僑胞宣撫團長)과 광복군(光復軍) 5지대장에 피임되어 동포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에 전력하였다. 귀국하여 수도사단장(首都師團將) 겸 제3관구사령관(第三管區司令官)을 역임하였다. 권준은 1959년 10월 27일 사망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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