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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양지마을을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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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위해 작년에 사회복지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사회복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다. 근데 아무리 자격증을 준비해봐도 사회복지자격증에 대한 의문만 들었는데... 허례허식, 명분이 주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서는 몇번 들어봤는데, 양지마을에 대한 사건은 처음 들어서 이렇게 블로그에 남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정말 문제가 많다.... 지금의 윤정권 처럼... 비리투성이고 인권 매립 수준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건이나 장면들이 있다. 내게는 1998년 7월에 진행했던 ‘양지마을’ 인권유린 조사 과정이 그렇다.

양지마을에서 탈출한 박아무개씨가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던 인권운동사랑방에 온 것은 그해 7월10일이었다. 동국대 학생들이 놀이터에서 술 마시고 있는 박씨를 발견하고 우리 단체로 데리고 온 것으로부터 양지마을 사건은 시작되었다.

박씨는 온몸이 긁히고, 찢긴 상처투성이였다. 그 상처들을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방치해 놔서 고름이 차 있었고, 썩어들어 가는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한밤중에 쇠창살 사이로 몸을 빼내서 담을 넘고 산속을 정신없이 달리다가 난 상처들이었다. 그를 씻기고, 밥을 먹인 다음 날부터 나는 그의 증언을 들었다. 그의 증언 자체는 경악할 만한 내용이었다. 대전역, 조치원역, 천안역 등에서 사람을 납치하고, 그들을 폭행하다가 사망에 이르면 개미고개라는 곳에 암매장하고, 여성들은 불임시술을 하고, 강제노역을 시킨다고 했다. 군대처럼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이란 계급을 부여하고, 시설장의 말을 잘 들으면 여자와 합방도 시켜준다는 그런 얘기를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박씨를 앉혀놓고 의심나는 대목을 하나하나 확인해갔다. 그에게 그곳 시설에 대한 그림도 그리게 했다. 그의 진술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조치원까지 내려가 지역 신문의 함아무개 기자도 만났다.

“그분의 증언이 무척 구체적이네요. 이분이 말하는 게 사실일 겁니다. 이런 소문이 들려서 취재하려고 했는데, 그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서 양지마을은 교도소와 같은 높은 담이 설치되어 있고, 철문 세개를 통과해야 그곳에 수용된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도 확인해주었다. 박씨의 말이 지어낸 얘기가 아닌 사실임을 확인하는 순간, 다음 순서를 생각했다. 인권운동사랑방과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들로 조사단을 구성했다. 거기에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이성재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고, 정신과 의사로 유명했던 김병후 원장도 동행하기로 했다. 한국방송(KBS)과 한겨레 등의 언론사들도 따라붙었다. 나는 이 조사를 ‘햇볕 작전’이라고 명명했다.

1998년 7월16일 오전 7시경, 새벽 조치원에 집결한 40여명 되는 조사단과 취재진은 각자의 차에 타고 양지마을로 향했다. 채 해도 뜨기 전에 시설을 급습한 것이었다. 눈앞에 교도소 담장만큼이나 높은 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이 있으니 근무자가 철문을 땄다. 그러자 40여명 되는 사람들이 우르르 정문을 통과했다. 다시 중간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군대 막사 같은 곳이 나왔다. 핏기 없는 얼굴의 남자들이 쇠창살 질러진 창에 얼굴을 내밀고 들이닥친 우리를 내다봤다. 막사로 들어가는 문은 밖으로 잠금장치가 되어 있었고,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밖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쇠창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우리에게 하소연했다.

“제발 우리를 집에 가게 해주세요. 여기는 지옥입니다.”

“여기는 감옥보다 더해요. 형기가 없어요. 죽어야 나갈 수 있어요. 문 좀 열어 주세요.”

열쇠를 갖고 오게 해서 막사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영락없는 군대 내무반 구조였다. 양옆으로 나무로 된 침상이 있었다. 그런데 문 입구에는 쇠창살이 질러진 방이 두개가 있었는데, 그곳에 밧줄과 채찍 같은 게 걸려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지 충분히 짐작하게 하는 도구들이었다.

이 지옥의 주인은 노재중이란 자였고, 그와 그 가족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천성원이라는 사회복지법인을 운영했고, 대전과 이곳 충남 연기군 전동면(현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에 양지마을, 송현원, 요양원 등 세개의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노재중과 양지마을 직원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이성재 의원의 요청으로 경찰이 나왔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양지마을과 송현원에서 당장 나가고 싶은 이들의 의사를 확인했다. 그러자 20명 넘는 사람들이 희망했다. 버스를 급히 구해서 그들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왔지만, 당장 어디로 갈 곳이 없었다. 대전에 있는 가톨릭농민회관에서 이틀 밤을 지내면서 그들을 면담했다.

사회복지란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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