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6) 썸네일형 리스트형 이것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뜻입니다. 1950년 3월 1일 이승만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전문입니다. 8·15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성립, 정치·경제·교육 방면의 정비과정을 소개하고, 태평양대회를 통해 자유국들이 합동해서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처해 나가자는 내용이다.주요내용은 '국가의 독립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애국선열들이 만세운동을 일으켜 대한민국을 민주국가로 세계에 선포하여 민주주의의 토대를 세우고, 유엔의 감시 하에 정부가 수립된 것은 민중이 삼일정신을 지켜나간 것이니 이러한 삼일정신을 발휘해서 세계평화를 위해서 나아가자'는 것 등이다. 전한길이 전하는 6.25 6.25 10월 UN군과 국군이 평양개박살미국이 이승만 제거 작전 계획 이승만이 제시한 휴전협정조건 이승만이 UN에 건네준 대한민국 군대의 전시작전권대한민국을 지켜주는 주한미군... 출처:메가공무원 전한길 한국사 강의 하이라이트 미 군정청과 윤석열의 할아버지 윤호병 이야기 조선은행 총재: 윤호병은 1948년 미 군정청에 의해 조선은행 총재로 임명되었습니다1948년 10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은 윤호병 조선은행 총재를 사퇴시키고 최순주를 그 자리에 앉혔다. 조선은행 총재는 법률에 따라 환은 총재직을 겸임하는데, 넉 달 전 미 군정청이 임명한 윤호병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미 군정청이 지시하는 외환정책을 집행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사진3:농지개혁법안 공포를 알리는 당시 신문 기사(1949년 6월). 이듬해 3월 시행된 남한의 농지개혁은 북한에 비해 정확히 4년 늦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승만은 환은을 해체키로 결심했다. 환은이 존속하는 한, 새로 체결된 한미원조협정 때문에 외환정책은 물론 어떤 경제정책의 자주성도 확보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예수교국으로 만들려한 이승만 1895년 4월, 20세 이승만은 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에 들어가 영어와 서구문명, 기독교를 접했으나 당시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또한 배재학당 입학 시 어머니와 '야소교'는 믿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24세 이승만은 박영효 추종자들의 쿠데타 음모에 가담되어 “1899년 1월 경무청 구치소에 구금되었고 그해 7월에 개정된 평리원(고등법원)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아 한성감옥서에 장기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 선교사들의 집중적인 탄원으로 고종 황제의 감형 특사를 세 차례 받아 5년 7개월간의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1904년 8월 7일 석방되었다”(유영익,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조각, 2013, p. 90). 체포 직후 이승만은 경무청 구치소에서 혹독..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정부... 이런 정부도 있었습니다. 전쟁 나자 도망친 이승만 정부, 왜 수십만 민간인을 학살했을까 | 한국일보한국전쟁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전쟁이다. 공식 조사에 따르면 남한에서 전사자는 국군과 유엔군을 합쳐 17만여 명인데 민간인 사망자는 10www.hankookilbo.com 이승만 정부의 민간인 학살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좌익 전향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었으나, 실제로는 무고한 민간인들도 강제 가입되었습니다. 전쟁 발발 후 이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학살이 이루어졌습니다. 국민방위군 사건:청년들을 징집한 후 제대로 된 보급 없이 방치하여 수만 명이 사망하고 20만 명 이상이 동상 피해를 입었습니다. 부역자 처단: 서울 수복.. 국가가 국민을 챙기지 않은 정부, 역사는 반복되고 있죠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조직적 학살보도연맹원 등의 연행과 구금, 살해는 한강이남 전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일어났다. 정부는 전쟁 발발 당일인 6월 25일 ‘요시찰인 단속과 전국 형무소 경비’, ‘요시찰인 전원 구금’ 등의 조치를 내렸고, 그에 따라 실제 여러 지역에서 ‘요시찰인’들이 전쟁 발발 당일부터 연행되었다. 제주 성산포경찰서에서 찾아낸 기록 자료에 의하면, 이미 6월 27일 요시찰 검거 구속자를 상부에 보고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28일부터 일부지역에서 소집, 연행된 보도연맹원들이 살해되었다. 제6사단 헌병대 상사였던 김만식은 28일보다 하루 앞선 27일에 관련 명령을 받았다고 증언했다.충남경찰국 사찰과에 근무했던 서아무개도 ‘6월말’에 치안국으로부터 좌익..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