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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정부... 이런 정부도 있었습니다. 전쟁 나자 도망친 이승만 정부, 왜 수십만 민간인을 학살했을까 | 한국일보한국전쟁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전쟁이다. 공식 조사에 따르면 남한에서 전사자는 국군과 유엔군을 합쳐 17만여 명인데 민간인 사망자는 10www.hankookilbo.com 이승만 정부의 민간인 학살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좌익 전향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었으나, 실제로는 무고한 민간인들도 강제 가입되었습니다. 전쟁 발발 후 이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학살이 이루어졌습니다. 국민방위군 사건:청년들을 징집한 후 제대로 된 보급 없이 방치하여 수만 명이 사망하고 20만 명 이상이 동상 피해를 입었습니다. 부역자 처단: 서울 수복..
조선귀족을 아세요? 1910년 10월 7일, 대한제국의 귀족 76명이 탄생했다. 윤택영과 이재완 박영효 등 6명이 후작, 이완용 등 3명이 백작, 송병준 등 22명이 자작, 감가진 등 45명이 남작 작위를 받았다. 한일합방 직후 일제가 일본의 화족제도를 응용해 일본 황실령 제14호로 공포한 ‘조선귀족령 朝鮮貴族令’에 따른 조치였다. 허울로나마 조선의 신분제가 사라진 것은 갑오경장(1894년) 이후 불과 16년이었다.조선의 귀족은 일본 화족과 동일한 예우를 보장 받아, 법규와 동급의 가범(家範)을 제정할 권리를 지녔고, 국가나 왕실 의례시 작위에 따른 지정 좌석을 부여 받았다. 귀족 자제는 무시험으로 경성유치원과 화족 학교인 가큐슈인(習學院)에 입학할 자격을 얻고, 결원이 생길 경우 도쿄와 교토 제국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역사 속 4월 16일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하며 임진왜란기와 광해군대 임시 궁궐인 행궁으로 사용되었다가 인조반정 이후 폐기되었다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궁으로 이용되었습니다.대한제국의 정궁(正宮)으로 사용되었고, 현재 덕수궁이라 불리는 궁궐입니다.임진왜란 중인 1593년(선조 26)에 선조가 피난지인 의주에서 서울로 돌아와 정릉동에 있던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사저에 머물면서 행궁으로 사용하던 곳을 1611년에(광해군 3) 광해군이 처음 경운궁이라 이름 붙였습니다.1623년(인조 1)에는 인조반정 뒤에 인조가 경운궁 즉조당(卽祚堂)에서 즉위하였으며, 이후 1748년(영조 24)에는 영조가 인조의 즉위처를 확인하기 위해 경운궁에 임어하기도 했습니다. 고종 이전까지 명례궁(明禮宮)이 자리하기도 했습니다.고종대 황폐한..
윤석열 그리고 김영삼 하나회 잘라낸 정치 9단 검객김영삼은 어떤 인물이었나?“천하를 말 위에서 얻었는데 내 어찌 이나 에 구애되겠는가” 하고 유방(劉邦)이 투덜거리자 고전을 자주 인용하던 육고(陸賈)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어찌 말 위에서 다스리실 수 있겠습니까?(居馬上得之, 守可以馬上治之乎)” 하고 반문했다는 일화가 에 나온다.거산(巨山) 김영삼(金泳三)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고사다. 물론 경남고→서울대의 명문교를 나온 그는 자기 이름 석 자도 쓸 줄 몰랐던 건달 출신의 유방과는 학식의 배경이 다르다. 그런데도 묘한 것은 미국의 가 보도했던 것처럼 “(김대중은 너무 과격하고, 김종필은 너무 때 묻어 있으며) 김영삼은 능력이 좀 모자란다”(, 1980년 4월 11일)는 식의 세평이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는 점이다. 이러한..
국가가 국민을 챙기지 않은 정부, 역사는 반복되고 있죠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조직적 학살보도연맹원 등의 연행과 구금, 살해는 한강이남 전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일어났다. 정부는 전쟁 발발 당일인 6월 25일 ‘요시찰인 단속과 전국 형무소 경비’, ‘요시찰인 전원 구금’ 등의 조치를 내렸고, 그에 따라 실제 여러 지역에서 ‘요시찰인’들이 전쟁 발발 당일부터 연행되었다. 제주 성산포경찰서에서 찾아낸 기록 자료에 의하면, 이미 6월 27일 요시찰 검거 구속자를 상부에 보고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28일부터 일부지역에서 소집, 연행된 보도연맹원들이 살해되었다. 제6사단 헌병대 상사였던 김만식은 28일보다 하루 앞선 27일에 관련 명령을 받았다고 증언했다.충남경찰국 사찰과에 근무했던 서아무개도 ‘6월말’에 치안국으로부터 좌익..
6.25이후의 한국은 학살지 학살자 명부 품고 있던 경찰서…더 남아 있을 수 있다  경북 경산시 경산 경찰서는 1945년 설립 후, 세 번 이사를 했고, 1999년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지난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들이 경찰서를 찾았다가, 건물보다 오래된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한 캐비닛에서 6.25 전쟁 당시 설립된 보도연맹 원 경산 지역 명부를 찾은 겁니다. 그런데, 어렵게 찾은 이 리스트에도 피해자 명단은 일부만 남아 있었습니다. 군단의 이상에서 희생자 수가 비교적 온전히 담긴 자료를 찾은 곳은 울산과 김해, 청도 세 곳뿐이었습니다.학자들은 경찰서나 군 정보 기관에 관련 자료가 더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시 정부가 관리했던 보도연맹 가입자 명부가 아니더라도, 그 당시 피해자 가족들을 관리하기 위한..
유치진이란 사람을 아시나요? 대한민국의 극작가. 본관은 진주 류씨 토류계[1], 아호는 동랑(東郞 또는 東朗). 극작가 외에도 연출가, 연극비평가, 연극행정가, 소설가 등 문학계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다. 시인 유치환은 그의 동생이다. 부인이 대한제국 참정대신과 중추원 의장을 지낸 심상훈의 손녀 심재순인데, 을사조약 때 참정대신으로서 끝까지 조약 체결에 반대한 한규설이 처외조부이다. 일제강점기 말 각종 친일 연극을 상연한 전력이 있는 대표적인 친일 연극인이다.2. 상세[편집]1905년 11월 19일 경상남도 거제군(현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2] 507-5번지에서 한의사였던 아버지 유준수(柳焌秀)와 어머니 밀양 박씨 박우순[3] 사이에서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4년 통영공립보통학교[4]에 입학하여 1918년 졸업하였으며..
전원일기의 유인촌을 아시나요? 문화체육부장관까지 했었죠 대한민국의 극작가. 본관은 진주 류씨 토류계[1], 아호는 동랑(東郞 또는 東朗). 극작가 외에도 연출가, 연극비평가, 연극행정가, 소설가 등 문학계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다. 시인 유치환은 그의 동생이다. 부인이 대한제국 참정대신과 중추원 의장을 지낸 심상훈의 손녀 심재순인데, 을사조약 때 참정대신으로서 끝까지 조약 체결에 반대한 한규설이 처외조부이다. 일제강점기 말 각종 친일 연극을 상연한 전력이 있는 대표적인 친일 연극인이다.2. 상세[편집]1905년 11월 19일 경상남도 거제군(현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2] 507-5번지에서 한의사였던 아버지 유준수(柳焌秀)와 어머니 밀양 박씨 박우순[3] 사이에서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4년 통영공립보통학교[4]에 입학하여 1918년 졸업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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