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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꼭두각시 김옥균을 다시보자 갑신정변의 정치커넥션이 백일하에 노출되자 김옥균이 수세에 몰린다. 박영효와의 불화도 극심했다. 박영효는 타락해 가는 김옥균을 아타까워하며 증오했다. 이 와중에 정변망명객들을 송환하라는 조선의 요구와 고종이 직접 보낸 자객들의 움직임은 일본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망명객들을 바라보는 국제적 시선도 부담이었다. 1886년 7월 21일 전격 단행된 김옥균의 오가사와라 연금의 배경이다.일본정부는 후쿠자와와 도요마에게 압력을 넣어 김옥균의 지원 활동을 중단케 했고 그 시기 실제로 그들의 지원이 중단된다. 오가사와라에 도착한 김옥균은 그야말로 무일푼에 후원자 한명 없는 신세였다. 김옥균의 인생 중 가장 춥고 고통스런 시절이 그때였다.병아리 십여 마리를 얻어 길렀더니(養得鷄雛十許頭)틈만 나면 서로가 다투는구나(時來..
조선을 사랑한 선교사 제임스 게일을 아시나요? 오늘은 한국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캐나다 출신 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1863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태어난 제임스 게일. 그는 1888년, 25살의 나이로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39년 동안, 그는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헌신적인 활동을 펼쳤죠.1888년의 조선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검색 결과가 제한적이지만, 1880년대 조선의 전반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1888년의 모습을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1880년대 조선의 상황1880년대 조선은 개화와 혼란이 공존하는 시기였습니다. 1888년은 이러한 흐름 속에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대외 관계청나라의 강력한 간섭: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조선은 청의 사실상 반식민지 수준의 강한 간섭을 받고..
군대가 궁금한 여자에요 군국기무소에 대해 알아보아요 군국기무소는 1894년 갑오개혁 시기에 설립된 조선의 최고 정책 결정 기관입니다. 이 기관은 고종의 명령에 의해 1894년 7월 27일에 설립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17일까지 존속했습니다.  2024 군국기무소의 부활은 아니겠죠? 계엄령이 일어나선 안되는데요...... 군국기무소의 출발과 운영설립 배경군국기무소는 갑오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일본과 청나라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던 시기로, 일본의 영향력 하에 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구성원군국기무소의 주요 구성원으로는 영상총재 김홍집을 비롯하여 박정양, 김윤식, 유길준, 민영달 등 여러 인물들이 포함되었습니다 . 이들은 개혁을 주도하며 조선의 정치적 변화를 이끌었습니다.군국기무소의 활동과 영향주요 활동군국기무소는 갑오개혁..
육영공원 설립에 대해 잘 아시나요? 육영공원 설립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가능해졌다. 1883년, 미국 공사가 서울에 부임하면서 양국 간 교육 교류가 시작되었다. 민영익이 이끄는 단체가 미국을 방문한 후 미국식 대학 설립의 필요성을 느꼈다. 헐버트 박사가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 방문하여 학습을 진행했다. 서울의 미국 공사관은 조선에 미국식 학교를 설립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육영공원은 조선과 미국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개화 사업으로 추정된다.헐버트 등 세 명의 선생님이 조선에 초빙되었고, 이는 조선에 근대식 학교 선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조정은 이를 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 이전에 외교 고문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청나라에서 추천된 인물들이었다. 엘렌 더프라는 독일인이 청나라의 추천으로 조선..
친일 바라기 현 정권 국개(?)의원들 최고는 국감서 쓰레기라고 한 권영진 의원쓰레기의 뜻을 아는걸까요?저거 완전 쓰레기네 라고 했는데.... 와우 권영진 의원은 처벌 받지  않나요?  대담하시네요...  끼어들면 쓰레기인가요? 매번 끼어드는건 임이자 의원도 잘하시던데...  임이자 의원도 쓰레기인거에요?
첫 쿠테타 갑오개혁을 다시 봐야 해요... ◇갑신정변과 김옥균“아,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비상한 시대를 만났지만, 비상한 공적도 없이, 비상한 죽음만 얻었도다.(嗚呼, 抱非常之才. 遇非常之時, 無非常之功, 有非常之死)” 갑신정변의 주역 고균 김옥균의 묘비명이다. 박영효가 지었다고도 하고 유길준이 지었다고도 한다.김옥균(金玉均)은 1851년 2월 23일에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서 인조 때 우의정을 지낸 문충공 김상용의 9대손 안동김씨 김병태(金炳台)와 부인 은진송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살결이 ‘백옥같이 곱고 희다’고 하여 이름을 ‘옥균’이라 지었다고 한다.김옥균은 일곱 살 때 천안에 사는 당숙인 김병기(金炳基)의 양자로 들어갔다. 김병기는 광주목사를 지낸 김교근(金喬根)의 아들이며, 대사헌 김병규(金炳奎)의 동생이다...
영원한 미군정 진실은? 리고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항복하고 한반도는 광복을 맞았다. 여운형 등은 건국동맹을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로 확대 개편하였으며, 8월 말까지 건국준비위원회는 지방 세력의 호응을 받으며 전국에 145개 지부를 두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건준에게 행정권 등을 제대로 이양하지 않아 마찰이 벌어졌는데, 이는 일본 본국에서 행정권을 미국에게 이양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김성수, 송진우 등의 우익 세력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봉대[8]'를 주장하며 건국준비위원회에 협조하지 않았다.이러던 중 9월 초에 미군이 진주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건국준비위원회 측은 마음이 급해졌다. 때문에 9월 3일 내각 개편이 이루어지고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비중..
미국을 조심해요 제목: 5.16 쿠데타 세력이 몰려왔다... 미국을 조심해라...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1961년 5월 16일,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쿠데타의 성공1961년 5월 16일, 44세의 젊은 육군 소장 박정희가 이끄는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놀랍게도 이 쿠데타는 큰 저항 없이 성공했죠.왜 저항이 없었을까요?기존 정치권의 무기력함국민들의 무관심미국의 승인쿠데타 성공 후, 미국 CIA 한국 본부가 케네디 대통령에게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 보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죠:쿠데타에 대한 저항이 없었음한국 국민들이 무관심했음박정희가 과거 공산주의자였으나 현재는 단절했다는 점이 보고를 받은 미국은 곧바로 새 정권을 승인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박정희의 권력 장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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